2015년 3월 26일 목요일

부산 동구 문현동 안동네 돌산마을 벽화마을 만들기

문현`안동네` 벽화 옷 입고 날다

공동묘지 피란민촌이 전국구 스타된 사연

산복도로에 살다

- 골목 곳곳엔 무덤 남아있어 독특한 풍광 연출 
- 2008년 3월부터 동서대 교수·학생들 벽화그리기 모임 등 3개월간 참여해 47개 벽화 완성 
- 공공미술 대상 선정 '벽화마을'로 유명세, 관광객 발길 이어져… 영화 '마더' 촬영도  

부산 남구 문현1동 돌산마을. 문현동 안쪽에 자리잡고 있어 '안동네'라고도 불리기도 한다. 황령산 자락, 돌이 많은 산동네라는 것이 마을 이름에서 그대로 묻어 난다. 

부산의 가장 가난한 달동네, 290가구 900여 명의 돌산마을 사람들은 이제 새로운 마을 역사를 쓰고 있다. 돌산마을이라는 이름보다 '벽화마을'로 전국에 알려지면서 마을공동체가 살아나고 살기좋은 마을 만들기에 주민들이 힘을 모으고 있다. 돌산마을은 '공동묘지'라는 어두운 기억을 떨치고 자신감을 얻어 세상을 향해 당당히 기지개를 켜고 있는 것이다. 


■가난한 달동네 벽화마을로 날다 

   
부산 남구 문현1동 돌산마을은 공공미술 프로젝트를 통해 '벽화마을'로 탈바꿈했다. 지난 19일 전국 각지에서 '벽화마을'을 찾은 사람들이 '풍선불기' 등 각종 벽화가 그려진 마을을 둘러보고 있다. 곽재훈 기자 kwakjh@kookje.co.kr
고무풍선을 부는 천진난만한 소년, 강아지를 앞세우고 고추잠자리를 잡으러 들판을 내달리는 동네 꼬마들, 야구 공놀이를 하는 개구쟁이들…. 부산 문현동 돌산마을 어귀에 들어서면 벽화가 먼저 길손을 맞는다. 

이곳에 벽화가 조성된 것은 2008년 3월부터다. 부산시는 공공미술을 통한 아름다운 마을 만들기 시범마을로 돌산마을을 선정했다. 부산의 중심 서면에서 불과 2㎞ 정도 떨어졌지만 낡은 무허가 건물과 묘지가 뒤섞혀 '도심속 오지'로 방치된 마을의 주거환경을 개선하자는 의도였다. 

'따뜻한 사람들의 벽화이야기'라는 이름의 프로젝트는 같은 해 6월까지 이어졌다. 이 마을의 골목을 따라 모두 47개의 벽화가 완성됐다. 벽화는 조악한 '이발관 그림'이 아니라 창작물 위주였다. 동서대 디자인학부 교수와 학생들, 벽화 그리기 모임인 '거리의 미술 동호회' 회원, 자원봉사자, 마을 주민과 어린이들의 땀과 열정으로 '스토리가 있는 벽화'를 완성했다.

돌산마을(문현1동 15통) 황숙이 통장은 "벽화가 어느날 하늘에서 떨어진 것이 아니라 마을 사람들과 대화하고 토론하는 과정을 거쳐 탄생했기에 그만큼 자부심과 애정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정작 놀랄 일은 벽화가 완성되고 나서부터다. 단조로운 외벽이 밝고 화사한 거리의 갤러리로 바뀐 마을 모습이 입소문을 타고 알려지기 시작했다. 전국의 지자체 공무원과 의회에서 찾아오고, 대학교수와 학생들의 참관 수업이 줄을 잇고 있다. '아마추어 사진작가'의 카메라 셔터 누르는 소리가 그치는 날이 없다. 토, 일요일엔 이들 방문객이 타고 오는 승용차로 마을 앞 도로는 거대한 주차장으로 변하기 일쑤다. 

상복도 터졌다. 돌산마을 벽화 프로젝트는 2008년 문화체육관광부로부터 '공공미술 대상'에 선정됐다. 돌산마을이 '벽화옷'을 입고 하늘 높이 날게 된 것이다. 이제 돌산마을이라는 원래 이름보다 '벽화마을'로 훨씬 잘 알려져 있다. 

여기에다 영화촬영지로도 각광받고 있다. 지난해 5월 개봉한 봉준호 감독의 '마더'는 작품 대부분을 이곳에서 촬영했다. 원빈과 김혜자가 모자 간으로 어릴적 살았던 마을이자 원빈이 살인사건을 저지른 현장이 바로 돌산마을이다. 

동아대 강사인 이규홍 박사(조경학)는 "문화와 예술, 친환경 공원 조성을 통해 돌산마을은 이제 새롭게 태어나고있다"고 진단했다. 부산에서 가장 살기 좋은 마을공동체를 지향하는 돌산마을 사람들의 꿈이 이뤄질 날은 언제일까. 


■삶과 죽음의 기묘한 동거 

   
돌산마을은 195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산 속 공동묘지였다. 일제 강점기 서구 아미동이 일본인들의 공동묘지였다면 이곳은 한국인들의 공동묘지였다. 마을의 노인들은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오갈데 없는 도시의 피란민 등이 하나 둘 공동묘지 속으로 들어와 움막을 치고 살기 시작하면서 마을이 형성됐다고 말한다.  

마을이 형성되면서 묘지가 집 속에 갇히게 된다. 좁은 마을 골목, 작은 규모의 집들이 옹기종기 붙어 있는 모습이 1970년대 풍경을 연상케 한다. 시간이 멈춰선 마을. 지붕 위에 올려진 큼지막한 푸른색 저수통(물탱크)이 눈길을 끈다. 지붕의 절반을 차지하는 저수통이 2002년까지 산수도로 식수를 해결할 수밖에 없었던 이 마을의 열악한 상황을 말해주고 있다. 

골목을 걷다 보면 골목 곳곳에, 담장 안쪽에 완만한 곡선 형태를 한 봉긋한 흙더미를 심심찮게 발견하게 된다. 그 흙더미가 바로 무덤이다. '산 자와 죽은 자의 동거' 현장이 이보다 더 생생할 수 있을까. 

어떤 봉분은 빗물에 씻겨 내려가지 않도록 단단한(?) 시멘트 옷을 입었고, 어떤 묘지는 봉문만 남은 채 마늘과 채소를 가꾸는 산자의 텃밭으로 변했다. 다행스럽게도 어떤 봉분은 반듯한 묘지석과 꽃이 꽂혀 있어 자손이 참배하고 갔음을 알 수 있었다. 삶과 죽음의 경계마저 허물어진 풍경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돌산마을엔 80기가 넘는 묘지가 산 사람과 함께 영생을 누리고 있는 것이다. 

이 마을에서 30년째 살고 있는 이채홍(62) 씨는 "전국에서 벽화를 보러 이곳을 찾은 사람들이 묘지와 함께 살아가는 모습에 신기해하기도 하고, 또 다른 삶의 모습을 보고 가는 것 같기도 하다"면서 "마을 사람들은 공동묘지에 살고 있지만 여기가 명당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 돌산마을 변신의 두 주역을 만나다  

# 부산시 건축정책과 권영수 씨 

- "마을에 자부심 느끼는 주민 보면 뿌듯"
   
부산 문현동 돌산마을이 '벽화마을'로 탈바꿈한 데는 한 공무원의 헌신적인 마을사랑을 빼놓을 수 없다. 

칙칙하기만 했던 산동네를 전국의 공공미술 모범 마을로 만든 주인공은 부산시 건축정책과 권영수(50·6급) 씨. 그의 돌산마을 사랑은 198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86년부터 1년6개월가량 문현1동 동사무소에서 근무하면서부터다. 동사무소 직원으로 근무하면서 돌산마을의 열악한 생활환경을 알게 된 것이다. 

시 건축주택과에서 건축문화를 담당하고 있던 그는 2008년 3월 돌산마을 벽화거리 만들기 사업에 착수했다. "가난한 산동네 마을 벽면에 벽화 20여 점을 그릴 계획이었습니다. 그러나 당시 주민들은 '먹고 살기도 힘든데 벽화에서 밥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돈이 생기는 것도 아닌데…'하면서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습니다." 

이 같은 상황은 벽화작업이 시작되자 바뀌었다. 한 집 두 집 벽면에 벽화가 완성되자 주민들이 너도 나도 자기 집에 벽화를 그려달라고 나서는 등 태도가 180도 달라진 것이다. 그렇게 해서 이 마을 골목을 따라 47점의 벽화가 완성됐다. 당초 계획보다 두 배 이상 늘어났다. 그의 열정이 헛되지 않았던지 벽화프로젝트는 2008년 문화체육관광부로부터 '공공미술 대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다. 상금으로 받은 100만 원을 마을의 장학금으로 내놓기도 했다.

"주민들이 벽화로 달라진 마을의 모습에 자부심을 느낄 때 한없는 보람을 느낌니다. 돌산마을이 공공미술의 인식 전환과 확산을 위한 모범사례가 된다면 더 바랄 것이 없습니다."


# 돌산마을 통장 황숙이 씨 

- "동네에 생기 불어넣어 준 고마운 벽화" 

   
2004년부터 7년째 문현1동 15통(돌산마을·290여 가구) 통장을 맡고 있는 황숙이(여·51) 씨는 "벽화 덕분에 우리마을이 전국적으로 유명해졌다"면서 "산동네 사람들이 '공동묘지 마을'이라는 어두운 과거를 털어버리고 마을에 대한 자부심을 갖게 되면서 마을공동체가 새롭게 살아나고 있다"고 달라진 마을 모습을 설명했다.  

2008년 3월 부산시로부터 벽화그리기 시범마을로 선정됐다는 소식을 듣고 담당 공무원이었던 권영수 씨와 함께 집집마다 찾아 다니며 사업 설명과 설득에 나섰던 황 통장. 황 통장은 "반대가 심해 그린 벽화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모두 지우겠다는 약속을 한 후에야 작업을 시작할 수 있었다"며 사업 초기의 어려움을 털어놨다.

황 통장은 "전문가와 자원봉사자, 주민들이 협력해 아름다운 마을을 만들었다는 데서 자신감을 갖게 됐다"면서 "가난하지만 인정 넘치는 살기 좋은 마을공동체를 만들자는 희망과 기대에 부풀어 있다"고 마을 분위기를 소개했다. "벽화가 완성된 후 전국에서 우리 마을로 견학오는 사람이 줄을 잇고 있어요. 토,일요일에는 1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찾아와 마을 골목 구석 구석을 둘러보며 카메라에 담기도 하죠. 낮엔 모두 일터로 나가고 노인들만 남아 '적막 강산'으로 변하는 산동네가 생기와 활력인 넘치는 '사람사는 동네'로 변한 것이 벽화가 가져다 준 가장 큰 선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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